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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라어 원뜻성경(16)]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요한복음 5장 7절)
    헬라어(신약성경) 2026. 2. 11. 14:55
    ἄνθρωπον οὐκ ἔχω ἵνα βάλῃ με εἰς τὴν κολυμβήθραν 
    I have no man to put me into the pool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요한복음 4장 48절)

     

    베데스다 행각에 누워 연못의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38년된 병자. 물이 움직인 후,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치유를 받는 게임에서 승리하길 원합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을 들어 연못에 던져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의 판단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잘못된 상황 판단

    베데스다 연못을 둘러싼 행각은 동, 서, 남, 북, 그리고 가운데 하나, 총 다섯 개입니다. 역사적 정보에 따르면 연못은 가운데 행각을 기준으로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연못 주위를 둘러 행각 지붕 아래에 누워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못을 두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물이 움직이고 난 뒤에 너도 나도 연못으로 들어 가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사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병자도 마치 단거리 달리기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처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연못에 뛰어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연못이 가운데 행각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기에 어디에서 물이 움직이는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물이 움직이는 곳은 연못 안에서도 특정 위치였는데 고정된 장소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누워 있는 바로 앞에서 물이 움직일 때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정리하면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자가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째, 연못 물이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움직여야 하고 둘째, 그 누구보다 빨리 연못에 들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38년된 병자가 생각한, 자기를 들어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는 자비를 얻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지요. 

     

    2. 자비의 집(베데스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오래된 것을 이미 아셨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의 입에서 "네"라는 대답을 기대하시면서 그 질문을 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병이 깊다는 것을 아셨기에 단지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원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병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를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자의 질병을 한 순간에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 자신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누구이신지 몰랐기에 그는 주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주님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들었고, 또 자신 앞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이전에 기록되었던 여러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자신을 치료해 달라고 구했을 것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면 병자의 상황은 참 안타깝습니다. 특히 그 연못의 이름이 "베데스다"라는 것이 상황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드는데,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집을 의미하는 בַּיִת(발음: 바이트)와 자비를 의미하는 חֶסֶד(발음: 헤세드)가 결합된 것입니다. 즉, 자비의 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그 안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무력함이 그가 처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알지 못했을 지라도 그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자비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의인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 38년된 병자는 이 은혜를 값없이 받았고, 그 즉시 자리를 들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병자가 자리를 들고 가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인데, 그들 입장에서 안식일에는 사람이 병 고침을 받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개역개정으로 해당 부분은 "너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옳지 않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ἔξεστιν(발음: 에크세스틴)으로 "권한을 얻다, 허락받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빌면, 안식일에 병 고침을 받아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지 못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일을 하셨으니 유대인이든 누구든 그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가지 문제들에 봉착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지혜가 부족하기에 우리의 경험을 비추어,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곤 합니다. 그러나 38년된 병자처럼 돌아가는 상황을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오히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의지하는 것, 내 앞에 언제나 계시며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모든 해결의 근본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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