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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라어 원뜻성경(15)]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장 48절)
    헬라어(신약성경) 2026. 1. 26. 11:00
    ἐὰν μὴ σημεῖα καὶ τέρατα ἴδητε, οὐ μὴ πιστεύσητε.
    Unless you people see signs and wonders, you simply will not believe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장 48절)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 후에 왕의 신하를 통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 성경은 말하고자 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명절 중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일, 곧 여러 치유의 기적을 베푸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집에 오셔서 아들을 살려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1. 내려 오셔서

    왕의 신하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치유 방식은 환자에게 직접 찾아가 그의 신체를 만져 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죽어가는 자신의 아들의 회복을 위해 예수님께 두 번이나 내려 오시라고 말합니다. "내려 오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καταβαίνω(발음: 카타바이노)인데 별도의 영적 의미로 해석되지 않고 문자 그대로 사람 또는 사물이 이동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왕의 신하의 입장에서 그와 같은 방법 외에 자신의 아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가 다른 형태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그것을 예수님께 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하의 이러한 요청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언뜻 보면 왕의 신하의 요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왕의 신하의 요청은 "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왕의 신하의 마음에 정말 보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 왕의 신하에게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왕의 신하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무언가 자신의 눈으로 보아야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께 지속적으로 내려와 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살리는 것만큼 왕의 신하에게도 깊은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지금 이 문장은 분명 왕의 신하에게 하는 얘기지만 예수님은 "너희"라는 말로 복수를 사용하신 것으로 보아 "너희같은 부류"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런 일을 통해 오직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나타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왕의 신하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의 요청은 아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은 그 아들이 살 뿐만 아니라 왕의 신하가 예수님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신하의 입장에서 자신이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아들이 사는 것이 더 중요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육체의 생명이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표적과 이적은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회개를 이루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왕의 신하와 같이 보아야 믿는 자들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주길 원하셨습니다.

     

    2.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왕의 신하가 알고 있던 예수님의 치유 방식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오셔서 아들의 몸에 손을 대면 죽어가는 아들이 살아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무적인 사실은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하인을 만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언제 아들의 열이 떨어졌는지 물었고 하인의 증언에 따라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순간에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이 치유의 현장에 있지 않아도 그분이 결정하시고 명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이야기 후에 오늘의 본문이 등장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고백대로 다음과 같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요4:42)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더욱 확고하게 된 것은 그들이 본 것이 아닌, 들은 것의 결과였습니다. 왕의 신하는 보지 못하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땅을 사는 우리도 일생 중 기적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기적을 본다면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란 보지 않아도 말씀만으로 가능한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믿는다면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닌, 듣고 믿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넘쳐 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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