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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원뜻성경(14)]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한복음 4장 32절)헬라어(신약성경) 2025. 12. 17. 15:52ἐγὼ βρῶσιν ἔχω φαγεῖν ἣν ὑμεῖς οὐκ οἴδατε.I have food to eat that you do not know about.(요한복음 4장 32절)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먹을 것을 사가지고 온 제자들은 예수님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드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답을 하셨는데요, 자신은 이미 먹을 양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를 향해 누가 음식을 드렸는지 물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살리는 생명력의 원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1. 먹을 양식
예수님은 분명히 먹을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음식에 해당하는 단어를 다르게 해석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만약 다른 단어를 해석한 것이라면 제자들은 혼란을 겪지 않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양식"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βρῶσιν φαγεῖν(발음: 블로신 파게인)인데 βρῶσιν은 실제로 음식물을 의미하고, φαγεῖν은 "먹다"는 동사의 부정사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분명히 배가 고프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배고픔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찼고, 그래서 그들의 온 신경은 그것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제자들이기에 예수님께서 이미 양식이 있다고 하신 것은 그들에게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에게 참된 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제자의 올바른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양식에 대한 교훈을 주십니다. 양식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만약 배고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으려 한다면 그것은 그저 불필요한 과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과식은 유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인 배고픔은 필요에 따라 분명히 해결되어야 하지만 제자들의 생명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생명력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우선순위에 대한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아무리 배고플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행해야 한다는 명령일까요? 만약 그렇게만 해석된다면 이는 금욕주의로 흘러갈 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신비적인 효과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사람을 살게 하는 생명력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 그것은 육체의 배고픔마저 이겨내게 하고 그런 욕구가 자신을 주장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먹을 양식"에 대한 실제적인 해석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육체적인 배고픔을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오히려 배고픔에 갇혀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충만함으로 더 큰 생동력을 얻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실제적인 일입니다. 이것을 경험한 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먹을 양식"의 실제에 대해 공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일을 실현하는 것의 비밀을 경험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첫번째 올바른 태도입니다.
2.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제자의 올바른 태도 두번째는 추수 시기에 대한 민감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사마리아에서 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남자는 여인들과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제자들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아마 복음의 문제, 또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하여 사마리아인들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은 믿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초림을 통해 이 세상에 얼마나 추수할 것이 많아졌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의 대상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을 근원부터 바꾸는 것이었고, 그 시기마저도 재정립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추수에 대해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했습니다. 대상과 시기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며,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된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함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해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3.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제자의 올바른 태도 세번째는 사역에 대해 겸손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언급된 "먹을 양식"은 분명히 추수입니다. 제자들은 추수, 다시 말해 복음을 전해 영혼을 얻는 일에 대한 명령을 받았고 그것은 그들의 생명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해 영혼을 얻게 된 것은 그들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추수하기 위해 이미 씨를 뿌리고 노력한 자들이 있어야 했는데요, 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 자들입니다. 씨를 뿌린 자들은 안타깝게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것을 거두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만 뿌리고 거두지 못한 자들을 불쌍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추수하는 자들이 열매를 얻을 때 그 둘 모두 함께 기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의 기쁨에 대해 얘기하셨다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추수의 기쁨에 참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수많은 씨를 뿌리고 그것이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거두는 자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 결실을 하나님 나라에서 알게 될 것이라는 소망에 미리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누가 거두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는 항상 겸손을 동반한 순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읽을 때, 대부분 사마리아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통해 제자들을 교훈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정하신 미래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동일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우리 생명력의 원천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필요를 뒷전으로 생각하게 만들 것입니다.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소망합니다. 추수, 곧 전도는 모든 제자들에게 내려진 엄숙한 명령입니다. 이미 밭은 희어졌고 추수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추수할 때마다 그 일 앞서 노력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영혼을 얻었다면 그것은 이미 노력한 자들의 수고에 참여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가지 태도가 우리 삶에 언제나 유지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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