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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원뜻성경(10)]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요한복음 3장 25절)헬라어(신약성경) 2025. 10. 1. 15:58Ἐγένετο ζήτησις περὶ καθαρισμοῦa matter of dispute developed about purification(요한복음 3장 25절)
정결 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질투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상황은 "정결예식"에 대한 변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 정결 예식에 대한 변론
아마도 보통 요한복음 3장 22절부터 시작되는 단락을 읽을 때, 세례 요한의 진술, 곧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는 말에만 집중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이 그의 제자들에게 대답함에 있어 한 유대인과의 정결예식에 대한 변론이 있었다는 것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이미 정결 예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인데요, 그 때도 성경은 물이 정결 예식을 위해 그곳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요 2:6)
유대인에게 정결 예식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구약성경에 기록된 정결 예식은 그 중 하나였습니다. 정결 예식이 요한복음 2장에도 등장하고, 3장에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그 의미를 단순히 배경을 위한 설명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판단됩니다. "정결 예식"은 헬라어로 καθαρισμός(발음: 카싸리스모스)인데 예식뿐만 아니라 거룩함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물을 통한 정결 예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통용되어 왔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 세례 요한이 물로 사람들에게 세례(침례)를 주는 것을 한 유대인이 보았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정결 예식에 대해 변론을 시작했을 듯 합니다. 성경에 확실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한 유대인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정결 예식이 있는데 왜 너희는 다른 형태의 세례(침례)를 주는지,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회개를 위한 세례(침례)의 필요성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대로 대답했을 것이고 이 문제는 신학적 변론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세례 요한이 세례(침례)를 주던 반대편에서는 예수님도 세례(침례)를 주고 있었는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조금은 복잡한 감정을 갖게 했을 듯 합니다. 자신들이 베푸는 세례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과는 다른, 아주 본질적인 회개의 표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것을 위해 자신들에게 오기보다 예수님께 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복잡한 감정을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토로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기대하는 대답이 있었을 텐데, 오히려 세례 요한은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라고 대답했습니다.
2.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흥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데요, 그들은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라고 증언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침례)를 받으러 오지 않아 답답해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더욱 드러날 수 있다면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종이었고,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또한 그런 역할의 일꾼임을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는 모든 사역이 외적으로, 내적으로 부흥하기를 누구나 바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부흥이 없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같은 동일한 감정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자신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드러나는 일의 선봉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때 세례 요한 역시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름도 없이 살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에서 쇠하여지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할 소임을 다했고, 특히 자신의 헌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사역에 대한 자기 인식입니다. 변론으로 시작되는 요한복음 3장의 이야기는 사람 마음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갈등을 들여다 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아 힘드십니까? 그럴 때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지금 하고 있는 일로 하나님과 예수님께 영광이 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길에 언제나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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