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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원뜻성경(74)] 주님이 내게 오시면... (창세기 18장 3절)히브리어(구약성경) 2022. 8. 12. 13:34
וַיֹּאמַ֑ר אֲדֹנָ֗י אִם־ נָ֨א מָצָ֤אתִי חֵן֙ בְּעֵינֶ֔יךָ אַל־ נָ֥א תַעֲבֹ֖ר מֵעַ֥ל עַבְדֶּֽךָ
And said My Lord if now I have found favour in thy sight pass not away I pray thee from thy servant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창세기 18장 3절)어느 더운 날,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눈을 들어 본 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 있었고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쉼을 주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달려갔습니다.
1. 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던 아브라함
이 세 사람은 한 분은 여호와이시고 두 사람은 천사입니다. 한 사람이 여호와라는 것은 창세기 18장에 명확히 기록이 되어 있고 나머지 두 명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러 간 천사라는 것 또한 창세기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궁금한 점은 아브라함이 이 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냐는 것입니다. 많이 알려진 해석은 아브라함이 이 세 사람을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13장 2절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는 구절을 연관시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그랬던 대로 자신에게 오는 손님들을 극진히 맞이했을 뿐인데 그런 사람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이 창세기 18장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이견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정말로 어느 손님에게든 그렇게 대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19장에 기록된 롯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내 주여"라고 부르며 자신들을 "당신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내 주여"라는 말은 히브리어 אֲדֹנַ֗י(발음: 아도나이)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때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아울러 "당신의 종"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עַבְדֶּֽךָ(발음: 아브데카)로 그저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소유로서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모습이지만 그만큼 그들은 손님 대접하기를 하나님을 만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2. 여호와를 알았던 아브라함
창세기 18장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극진히 세 사람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정말 아브라함이 한 사람이 여호와인 줄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기록된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올라가셨습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여호와를 이미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자신 앞에 나타나신 여호와를 봤을 때 그는 그 분이 여호와이신 줄 단 번에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말이죠(개인적으로 현현하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형상을 바꾸셨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세 사람 중에 한 분이 여호와이신 것을 알고 그 분을 극진히 대접한 것이라는 해석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로 자신의 주인, 아도나이 하나님을 만나자마자 앉아 있는 자세를 고쳐 총알같이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에 쉼을 드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급히 준비했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해서 여호와와 천사들이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어떤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것을 먹었고 이는 아브라함의 행위를 통해 쉼을 누렸음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해석을 받아들이던 아브라함이 주를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렸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손대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였고 실질적으로도 하나님께 쉼을 드렸습니다. 그의 행위를 보며 나는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대가가 없으면 선행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내 모습... 성도를 대하는 태도마저 때로 비판으로 얼룩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 하루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그 분을 위해 단 한 가지라도 그 분이 받으실 만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선을 행함과 나눠주는 삶이 되기를 조용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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