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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어 원뜻성경(100)]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5장 34절)
    히브리어(구약성경) 2022. 9. 28. 10:46
    וְיַעֲקֹ֞ב  נָתַ֣ן  לְעֵשָׂ֗ו  לֶ֚חֶם  וּנְזִ֣יד  עֲדָשִׁ֔ים  וַיֹּ֣אכַל  וַיֵּ֔שְׁתְּ  וַיָּ֖קָם  וַיֵּלַ֑ךְ  וַיִּ֥בֶז  עֵשָׂ֖ו  אֶת־  הַבְּכֹרָֽה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pottage of lentiles and he did eat and drink and rose up and went his way thus Esau despised his birthright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5장 34절)

     

    한 어머니의 뱃 속에서 동시에 태어난 에서와 야곱.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들은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싸웠고 태어날 때도 먼저 나오고 싶었는지 동생은 형의 뒷꿈치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동생에게 있어 장자권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1. 에서의 별명은 에돔

    조용한 성격의 야곱과 다르게 사냥을 잘했던 에서는 어느 날 들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사냥을 마치고 왔는지 상당히 피곤했는데요, 때마침 야곱은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5장 29절에 기록된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라는 문장은 히브리어로 וַיָּ֥זֶד  יַעֲקֹ֖ב  נָזִ֑יד(발음: 바야제드 야아코브 나지드)인데 흥미로운 것은 "죽"을 의미하는 נָזִיד(발음: 나지드)"쑤다"라는 의미의 זוּד(발음: 주드)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입니다. 한글로는 두 단어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단어에서 나온 것이지요. 이 זוּד(발음: 주드)라는 단어는 "(죽을) 쑤다"라는 의미 외에 "거만하게 굴다", "교만을 행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야곱은 단지 죽을 쑨 것뿐이지만 그것은 사냥하고 돌아온 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자권을 빼앗기 위한 교만한 의도가 반영된 행위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실제로 25장 30절에 "에서의 별명은 אֱדֽוֹם(발음: 에돔)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 에서가 "붉은 것", 곧 히브리어 אֱדֹם(발음: 아돔)을 엄청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으면서 태어난 그 의지(?)를 가지고 형의 특성을 파악한 후 적절한 시기에 거래를 시도한 것이지요. 에돔은 별명대로 행동했고 야곱은 그 이름대로 행동했습니다.

     

    2.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

    야곱은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교환하자는 거래를 에서에게 제시했고 에서는 배고파 죽겠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야곱이 교활한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 거래와 관련해서 에서의 책임이 없는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행동을 책망하는 듯 그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음을 드러내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25장 32절에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구절인데요, 여기서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문장은 히브리어로 וְלָמָּה־  זֶּ֥ה  לִ֖י(발음: 베람마 제 리)인데 직역하면 "이것이 나에게 무엇이냐?"입니다. 직역한 문장을 보면 고상한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이 따위 장자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투로 말한 것처럼 보입니다. 배고파 죽는 것보다 장자권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에서의 고백, 성경은 이 행위를 망령된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히12:16)

    망령은 신성모독을 의미합니다. 그는 장자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두 가치를 비교할 줄 알았지만 가치의 진가를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놀라운 가치를 그저 세상에서 만들어진 사소한 것과 바꿨습니다.

    야곱과 같이 그리스도인 주변에는 언제나 올무를 놓으려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세상의 것과 바꾸라고 미혹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을 없어질 것과 바꾸는 것은 정말 미련한 일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없어질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므로 우리의 행동이 세상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것은 에서의 책임입니다. 영원한 것을 멸시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상급을 없어지지 않을 하늘에 쌓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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